[김정은, 정낙철교수] 고국으로 돌아온 '타미플루 히어로' 제2 인생 - 2013.01.13.
고국으로 돌아온 '타미플루 히어로' 제2 인생
김정은 박사(고려대 화학과 석좌교수)
수십년 간의 외국 생활을 마치고 국내에 둥지를 튼 지 8개월. 지난해 5월 초 연구자로서의 고국행 기자간담회를 열고, 연이어 대학교에서 특강을 맡는 등 한국 생활을 시작 한 김정은 박사 [사진]는 어느 때보다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그는 전세계를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 넣었던 신종 인플루엔자 치료제 타미플루 개발자로 세계에 이름을 날린 바 있다. 지금은 고려대학교 화학과 석좌 교수와 국내 바이오벤처사 부사장 타이틀을 갖고 제 2의 인생을 살고 있다. ‘타미플루 히어로’라 회자되고 있는 김정은 박사는 오늘도 신약 개발 연구와 후학에 열정을 쏟고 있다.[편집자주]
타미플루는 2009년 한 해 동안만 20억달러(한화 2조원)가 훨씬 넘는 매출액을 기록하면서 판권을 쥔 ‘로슈’와 개발사 ‘길리어드’는 그야 말로 대박을 쳤다. 신종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감염자들을 치료할 할 유일한 ‘약’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이 바이러스 위력은 1918년 약 2년 동안 세계 2500~5000만명의 목숨을 빼앗아간 스페인 독감을 회상하게끔 만들었다. 사망자들이 속출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도 국가 차원에서 촉각을 곤두세울 만큼 위세가 대단했다. 그러나 1년, 2년이 지나면서 이 바이러스는 사라졌다. 타미플루 덕분이었다.
소규모 회사로만 알려져 있던 길리어드를 단번에 세계적인 제약회사로 끌어 올렸다. 그 중심 역할에 김정은 박사가 있었다.
그런 그가 초기 길리어드와 비슷한 규모의 국내 바이오벤처사에서 늑깍이 제2의 인생을 설계하고 있다. 고려대 화학과 석좌 교수직도 겸임하게 됐다. 화학도 학생들에게 신약 개발에 대한 열정을 심어주고, 회사에선 신약을 개발하는 것이 그의 목표다. 그 타깃은 항암제다.
"항암제 신약 개발 매진"
김정은 박사는 “앞으로 항암제 개발에 포커스를 맞춰나갈 것”이라며 바이러스 백신 다음의 행보를 알렸다.
사실 김정은 박사는 유기화학 전공 교과서에 나와 있는 ‘Corey kim oxidation’ 메커니즘 발견자로 먼저 유명해졌다. 1965년 일본 동경대학교에서 제약학과 학사, 1967년 유기화학 석사 과정을 마친 뒤 미국 오리건 주립대학교에서 박사 학위 취득, 그리고 BMS제약과 길리어드사를 거친 제약 화학도이다. 약 60년을 일본과 미국에서 생활했다.
그런 그가 수 많은 외국계 기업의 러브콜을 뿌리치고 고국에 돌아온 이유는 무엇일까. 교수직은 고려대학교 화학과 정낙철 교수의 주선으로, 그리고 카이노스메드 부사장직은 회사 강명철 대표이사와의 인연이 크게 작용했다는 전언이다.
특히 앞서 강 대표이사가 미국 코리 랩에서 포스트 닥터였을 당시, 김정은 박사는 함께 연구할 인력이 필요해 코리 랩을 찾아가 강 대표를 처음 봤다. 인연은 이렇게 시작됐다.
"한국 신약개발 능력 세계 최고 수준"
현재 카이노스메드 연구실은 서울아산병원 내 아산생명과학연구원 11층에 위치해 있다. 김정은 박사는 카이노스메드 강 대표이사와, 김두섭 부사장 이렇게 세 명의 드림팀을 구성, 본격적인 연구를 진행 중이다.
김두섭 부사장은 앞서 머크에서 제2형 당뇨병치료제 자누비아를 개발한 바 있으며, 강명철 대표는 미국 벤처사 트라이메리스 재직 당시 신개념 에이즈 치료제 퓨지온 개발을 주도했었다. 구성만 봐도 카이노스메드가 신약 개발을 위한 회사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김정은 박사는 “한국의 신약개발 능력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이러한 최고 능력을 지닌 각 분야 전문가들이 한 방향으로의 연구에 집중할 수 있도록 힘을 모아야 할 시기”라고 강조했다.
그 동안 외국에서 살아왔지만 아내가 한국 사람이다 보니 한국어가 유창할 수밖에 없다는 그는 앞으로 고국에서 제2 타미플루 명성을 이어겠다는 의지다.
아울러 그는 앞서 고려대학교 백주년기념관에서 학생들을 대상으로 특강도 진행했다. 김정은 박사는 “국적은 언제나 ‘한국’이었다. 아메리칸 드림을 이룬 한국인으로 불렸지만, 앞으로는 한국에서 뭔가를 해보고 싶다”는 소망을 내비쳤다. Dailymedi 이영성기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