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렬 교수] "욕실 물때·부엌 기름때 없애려면..." 화학과 교수의 초간단 청소법
지난 2019년 3월, 일본 야구의 전설인 스즈키이치로(鈴木一朗) 선수가 28년 동안의 현역 생활을 마무리하고 은퇴를 선언했다. 당시 일본 언론에 따르면, 선수 생활을 접은 이치로 선수는 평생 한 번도 해본 적 없던 집안 청소를 하고, 아침밥을 만들고, 설거지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야구의 신(神)조차도 은퇴해 가정으로 돌아가면 피하기 어려운 것이 집안일이다. 하지만 한국에선 은퇴 가정이라고 해도 여전히 아내가 집안일을 도맡아 하는 것이 현실이다. 지난해 여성가족부 조사에 따르면, 60대 이상 부부의 경우 아내 혼자 가사 노동을 하는 비율이 80%에 달했다.
일러스트=조선디자인랩 이연주
정돈된 집, 깨끗한 옷, 따뜻한 식사는 절대로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퇴직해서 시간적인 여유가 많이 생겼는데도 부부 중 어느 한쪽만 가사를 분담한다면, 부부 불화의 씨앗이 된다. 일본 은퇴 전문가인 오오에히데키(大江英樹)씨는 “은퇴 후엔 남편이 사소한 집안일을 쌓아가야 부부 사이가 좋아진다”고 말했다.
그런데 막상 집안일에 도전하고 싶어도 (해 본 적이 없으니) 어디를, 어떻게 손대야 할지 잘 모를 수 있다.
고려대 화학과 이광렬 교수는 최대한 빠르게, 그러면서도 좀더 쉽게 집안일을 해결하고픈 이들에게 ‘화학적 살림살이’를 권한다. 화학적 살림살이란, 화학적인 지식을 활용해서 노동 시간과 에너지를 단축시키는 살림법을 말한다. 요령을 터득하면 회사일보다 더 쉬워지는 화학적 청소. 이 교수가 최근 펴낸 <게으른 자를 위한 수상한 화학책>에 나오는 초간단 청소법을 소개한다.
주방 후드 거름망 기름때
부엌에서 거의 매일 사용하면서도 청소는 자주 하지 않는 곳이 바로 가스레인지 후드 거름망이다. 거름망은 방치하면 누런 기름때와 먼지가 들러 붙어 지저분해진다.
이 교수는 번거롭게 느껴지는 후드 거름망 청소는 염기성 용액인 워싱소다(탄산소다)로 쉽게 해결할 수 있다고 했다. 염기가 기름과 만나면 비누를 만드는 원리를 이용하는 것이다. 워싱소다는 베이킹소다를 높은 온도에서 분해하면 생기는 물질인데, 염기성이 매우 강하다.
우선 고무장갑을 끼고 4분의 1컵 정도의 물에 워싱소다 1컵(250mL) 분량을 넣어 반죽을 갠다. 그 다음 워싱소다 반죽을 후드 거름망에 바르고, 솔로 사이사이 문질러 준다. 싱크대나 욕조 바닥에 30분 정도 내버려 둔 뒤에, 물로 씻어주면 된다(※주의:거름망이 스테인리스가 아니고 알루미늄 혹은 구리라면 바르고 바로 씻어야 한다).
이 교수는 “워싱소다에 물을 조금 첨가하면 치약처럼 만들 수 있는데, 이걸로 기름기 많은 냄비나 지저분한 전자레인지 내부를 닦아도 좋다”면서 “워싱소다가 기름에 화학 작용을 할 수 있도록 충분히 기다려주는 게 포인트”라고 말했다.
화장실 양변기 테두리 물때
고급 호텔의 쾌적하고 깨끗한 화장실은 모든 사람들의 로망이다. 이 교수는 “양변기는 집안에서 세균이 번식하기 가장 쉬운 공간인데 고여 있는 물을 청결하게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양변기에 테두리 물때가 남아 있으면 화장실에서 향기가 나지 않는다”고 했다.
이 교수의 초간단 양변기 청소법은 이렇다. 먼저 산성 구연산을 한두 스푼 정도 테두리 물때 부분에 솔솔 뿌리고, 솔이나 수세미로 가볍게 닦아 준다. 물을 한 번 내린 뒤에 테두리 물때가 잘 끼는 곳과 그 부근에 과탄산소다를 한 스푼 뿌려준다. 다음 볼일을 볼 때까지 그대로 놔둔다.
“변기 청소를 할 때 락스를 사용하는 분들이 많죠. 락스는 빠른 시간에 청소 효과가 나오는 물질이지만, 암모니아와 만나면 ‘클로라민’이라는 유독성 물질을 만듭니다. 불가피하게 락스로 변기 청소를 했다면, 물을 여러 번 내리는 것이 안전합니다.”
그래픽=조선디자인랩 이연주
샤워부스 유리 파티션 찌든 물때
“청소하기 힘든데 차라리 떼어 버릴까?”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샤워부스 유리 파티션. 세제로 벅벅 문질러도 더러움이 가시지 않고 늘 뿌연 상태여서 볼 때마다 거슬린다. 샤워부스 유리를 더럽히는 원인은 탄산칼슘 침전물과 때(각질, 비누찌꺼기 등)다. 이 교수는 간단한 화학 지식을 활용하면 쉽게 해결할 수 있다고 말한다.
우선 마스크와 고무장갑을 착용하고, ⓵물과 구연산을 반반씩 넣어 만든 구연산 용액을 수세미에 묻혀 유리를 닦는다. 탄산칼슘(석회석)이 녹으면서 유리에 묻어 있던 묵은 때가 떨어져 나온다. 물로 헹구어 준 다음에는 ⓶워싱소다 용액(물:워싱소다=1:1)을 수세미에 묻혀 힘차게 닦는다. 염기성인 워싱소다 용액은 기름과 만나면 비누가 되어 찌든 때를 쉽게 제거한다. 다시 물로 헹구고 ⓵번과 ⓶번 작업을 반복한다(※주의:구연산과 워싱소다는 섞으면 안 되고, 따로 번갈아 가며 써야 한다).
유리가 깨끗해지면 마지막으로 세제(혹은 샴푸)를 묻힌 수세미로 거품을 내면서 닦고 물로 헹군다. 묽은 구연산 용액이나 묽은 식초로 헹궈도 된다. 세제로 유리를 닦는 이유는 세제가 남은 때도 없애 주고 세제 속 계면 활성제가 유리에 살짝 코팅되어 때가 덜 타게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거뭇거뭇 곰팡이 낀 배수구
집에서 악취가 가장 심하게 나면서 쉽게 더러워지는 세균 천국은 어디일까? 바로 배수구다. 특히 싱크대 배수구는 항상 촉촉하게 젖어 있는 데다 음식물 찌꺼기까지 있으니 세균들이 가장 빠르게 번식하는 곳이다. 이 교수는 세균 킬러인 과탄산소다로 청결한 배수구를 유지하라고 말한다.
“설거지가 끝나면 배수구에 과탄산소다를 몇 알갱이만 뿌려 두세요. 계란프라이에 소금을 친다는 기분으로 아주 조금만요. 과탄산소다가 물에 녹으면 과산화수소가 나오지만, 아주 소량이므로 스테인리스 재질의 싱크볼이 부식되거나 플라스틱 파이프가 변형되진 않아요. 과탄산소다를 굳이 뜨거운 물에 녹여서 쓸 필요도 없답니다. 뜨거운 물은 배관을 상하게 할 수 있으니 사용시 유의하세요.”
참고로 세탁기나 식기세척기도 과탄산소다 두어 스푼을 넣고 따뜻한 물로 한 번 돌리면 숨어 있는 세균들을 죽일 수 있다.
그래픽=조선디자인랩 이연주
여름 불청객 초파리 퇴치법
과일을 식탁 위에 올려 두면 윙윙 어디선가 갑자기 나타나는 초파리. 과일 표면에 초파리 알이 많이 숨어 있는데, 과일이 익으면 금방 알이 부화한다고 한다. 이 교수에 따르면, 초파리는 약국에서 파는 붕사(borax)로 간단히 죽일 수 있다. 붕사는 사람에겐 해롭지 않지만, 초파리에겐 소화계와 대사 작용을 엉망으로 만드는 치명적인 독(毒)이다.
페트병을 반으로 잘라 아랫부분만 남기고 물을 4분의 1 정도 채운다. 그 다음 붕사 1스푼, 설탕 2스푼, 사과식초 1스푼을 넣어준다(붕사+파인애플이나 붕사+자두즙 조합도 괜찮다). 키친타월 한 장을 길쭉하게 말아서 한 쪽을 잠기게 한다. 모세관 현상에 의해 자연스럽게 다 젖게 되는데, 냄새를 맡고 날아온 초파리가 그 위에 앉아 붕사액을 빨아 먹으면 미션 완료다.
구연산, 워싱소다, 과탄산소다 등 화학 제품은 제대로 쓰면 생활이 편리해지지만, 잘못 쓰면 문제를 일으킵니다. 기사 내에 언급된 순서와 용량, 방법에 유의해 사용해 주세요.